제61회 전국고교백일장 심사평 및 장원 수상작 공개
- 전국고교백일장 (국어국문학과)
- 조회수11381
- 2023-11-03
안녕하세요, 제61회 전국고교백일장 심사위원회의 심사평과 운문부 / 산문부 장원 수상작을 공개합니다.
장원 수상작은 첨부 파일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61회 성균관대학교 전국 고교 백일장]
산문부 심사평
힘겨운 시대, 안부의 의미를 묻는다.
성균관대 전국 고교백일장이 장장 61회에 이르렀다. 현존하는 대학 백일장 중 가장 오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다. 혼란하고 심란했던 코로나 팬데믹 기간 전후로 수많은 경시대회가 폐지되거나 중단되었지만, 우리 백일장은 고교 문사들과 소중한 인연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해마다 이 행사를 준비할 때마다 문학에 도전하는 고교생들이 예년보다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학령 인구 급감, 문학과 문해력의 위기, 입시 환경 변화 등등 매년 해오던 걱정을 올해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의 열띤 참여는 걱정과 우려를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심사를 진행하면서 시의성과 문학성을 두루 갖춘 글을 발견하는 기쁨 또한 컸다.
백일장 산문 부문에는 340명이 참가했고, 올해의 시제는 ‘안부’였다. 지금 우리는 비극적인 사회적 재난을 연달아 겪고 있다. 미래 재난에 대비하고 예방하는 방법이 ‘안부’이고, 개인과 사회 공동체의 중요성을 성찰하는 일이 ‘안부’이다. 상호 지원과 이해, 사회적 융합의 촉진, 개인과 집단의 회복력을 준비하는 일은 ‘안부’를 표현하고 공유하는 일과 별개일 수 없다. 서로를 향한 관심과 연대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장원으로 선정된 김태은 학생의 <콘크리트 속 안부>는 ‘안부’의 사회적 의미를 깊이 성찰하는 상상력이 돋보였고, 극적 긴장과 시의성 또한 놓치지 않았다. 이 작품의 주인공 화자는 ‘기둥’이다. ‘기둥’은 건설 현장에서 매일 지켜봤던 노동자를 기억하며 안부를 묻는다. 그이는 어린 딸을 키우는 어느 집 아버지였다. 그런데 이 장소는 근래 문제가 된 부실 공사의 현장이었고, 하필이면 완공식 날 붕괴 사고가 벌어진다. 주인공 ‘기둥’도 이때 부서져 돌무더기 잔해가 되고 만다. 다행히 어린 딸의 아버지는 무사히 살아남는다. ‘기둥’은 아담한 벽돌집이 되어 이 가족과 만나길 기원한다. 사건 전개의 작위성이 다소 아쉽긴 했으나, 심사위원 전원이 입을 모아 칭찬한 수작의 발견이었다.
차상인 배수인 학생의 <안부>는 유기견을 구조해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소재로 했다. ‘동물’을 소재로 한 ‘안부’에 대한 글이 참가작 중에 드물기도 했지만, 이 작품의 장점은 강렬한 몰입을 끌어내는 장면 묘사에 있다. 개장수에 잡혀갈 위기에 처한 강아지와 이를 외면하지 않고 단호하게 구출하는 주인공 화자의 결단이 숨 가쁘게 읽히고 안도감을 자아낸다.
천일정 학생의 작품도 차상으로 선정했다. 병중에 있는 조부모를 소재로 한 참가작은 비교적 많은 편이었다. 그러나 소재 수준에 머물지 않고 ‘치매 노인’ 문제의 시의성을 잔잔하지만 핍진하게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우수성이 인정됐다. 하얀 털실과 눈송이로 연결되는 서정적인 장면 묘사는 여운이 진하게 느껴진다.
그 외 수상작들은 슬리퍼, 인공지능, 고양이, 소, 보호아동 등 다채로운 소재를 다뤘다. 저마다의 장점이 있었지만 자기 언어로 시제를 표현하는 작품을 주목했다. 입상자들에게는 축하를, 낙선자들에게는 격려를 보낸다.
운문부 심사평
학생다운 고민의 표정이 미더워
운문부 시제는 ‘정류장’이었다. 정류장의 사전적 의미는 “버스나 택시 따위가 사람을 태우거나 내려 주기 위하여 머무르는 일정한 장소”(표준국어대사전)이다. 참가작 가운데는 이와 같은 사전적 의미에 충실하여 범박한 사실적 정보만을 기술하는 시들이 적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정류장과는 무관한 시적 상상력을 전개한 시들도 있었다. 시제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시제가 형성하는 속성을 입체적으로 탐색하는 작업을 수행한 작품들이 수상 후보작으로 논의되었다.
장원은 「바다 속 정류장」, 「해양 정류장」, 「정류장에서」가 경합하였다. 「바다 속 정류장」, 「해양 정류장」은 바다-해양과 정류장의 절묘한 결합이 공통적으로 두드러졌다. 그러면서도 자아를 세계화한 「바다 속 정류장」과 세계를 자아화한 「해양 정류장」의 차이점도 분명하게 구별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진실성이라는 주제가 부각되었는데, 이때 심사위원들의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 「정류장에서」였다. 「정류장에서」는 인생의 행로를 아직 정하지 못한 청춘의 막막함을 일관성 있게 형상화하였다. 시적 기교와 솜씨가 다른 작품에 비해서는 투박한 편이나, 이 시에는 단단한 시적 진실-모호한 현실에서 시적 주체의 방향성 찾기가 잠재해 있다. 이는 「정류장에서」가 그럴듯하게 만들어낸 시가 아닌, 시인 본인의 삶에서 길어 올린 작품인 이유가 가장 크다. 그리하여 「정류장에서」를 장원으로 선정하였다.
이보다 이미지의 응축과 전개, 화법 면에서 세련된 작품도 있었으나 그것이 기성 시인들의 모방 차원에 그쳐 아쉬움이 남았다. 우리에게는 어떤 기교보다도 학생다운 고민의 표정이 아름답고 미더웠다. 이상의 연유로 성균관대학교 고교백일장은 유명 시인들의 시를 일부 전유하여 제작한 시가 아니라, 자기 목소리를 고유하게 지닌 작품들을 수상작으로 뽑았다.
성균관대학교 전국고교백일장 심사위원회